"딸이 열두 살인데 학교에서 안내문이 왔어요." "저는 서른인데 이제 맞아도 소용 있나요?" "아들도 맞아야 한다는 게 사실인가요?" 진료실에서 요즘 가장 자주 듣는 질문들입니다. 2026년은 이 백신에 큰 변화가 생긴 해입니다. 남학생이 처음으로 무료 접종 대상에 들어왔고, 내년부터는 국가접종 백신이 9가로 바뀔 예정입니다.
01 — ONE CAUSE자궁경부암은 원인이 밝혀진 거의 유일한 암
대부분의 암은 원인이 여러 가지라 예방이 막연합니다. 자궁경부암은 다릅니다. 전체 자궁경부암의 95% 이상이 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 감염에서 시작됩니다. 원인이 바이러스 하나로 좁혀지니, 그 바이러스를 백신으로 막을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합니다.
HPV(Human Papillomavirus)는 200종이 넘는 흔한 바이러스로, 주로 성 접촉으로 전파됩니다. 성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일생에 한 번쯤은 감염될 만큼 흔하고, 대부분은 몇 년 안에 저절로 사라집니다. 문제는 16형·18형 같은 고위험군이 사라지지 않고 오래 머무는 경우입니다. 이 지속 감염이 수년에서 수십 년에 걸쳐 자궁경부 세포를 변형시키고, 그 끝에 암이 생깁니다. 자궁경부 외에도 항문암, 구인두암(편도·혀뿌리 부위), 음경암, 외음부암, 그리고 생식기 사마귀(곤지름)의 원인이 됩니다.
우리나라 상황은 어떨까요.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자궁경부암으로 새로 진단된 여성은 3,144명으로, 여성 전체 암의 약 2.3%를 차지합니다. 국가암검진 덕에 발생률은 1999년 이후 연평균 3.8%씩 꾸준히 줄고 있습니다. 다만 뼈아픈 수치가 하나 있습니다. 국가암검진 대상 암종 가운데 조기(국한) 단계에서 발견되는 비율이 2005년 62.0%에서 2023년 55.0%로 유일하게 감소한 암이 자궁경부암입니다. 젊은 층의 검진 참여가 저조하다는 뜻이고, 백신이라는 '앞단 방어'가 더 중요해진 이유입니다.
02 — REAL CANCER정말 암을 줄이나? 167만 명을 11년 추적한 답
백신이 나온 2006년 무렵에는 "전암 병변은 줄이지만, 진짜 암을 줄이는지는 아직 모른다"는 반론이 있었습니다. 암은 감염 뒤 수십 년 걸려 생기니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죠. 그 답이 2020년 NEJM에 실렸습니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연구팀은 10~30세 여성 1,672,983명을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추적해, 4가 HPV 백신을 맞은 사람과 맞지 않은 사람에서 실제 침습성 자궁경부암이 얼마나 생겼는지 비교했습니다.
| 구분 | 결과 | 의미 |
|---|---|---|
| 30세까지 누적 발생 | 접종군 10만 명당 47명 vs 미접종군 94명 | 절반 수준 |
| 전체 접종자 | 발생률비 0.37 | 위험 약 63% 감소 |
| 17세 이전 접종 | 발생률비 0.12 | 위험 약 88% 감소 |
| 17~30세 접종 | 발생률비 0.47 | 위험 약 53% 감소 |
첫째, HPV 백신은 전암 병변이 아니라 '진짜 암'을 줄입니다. 둘째, 효과는 어릴 때 맞을수록 크지만, 성인이 되어 맞아도 절반 가까이 줄어듭니다. "이미 늦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어릴수록 효과가 큰 이유는 단순합니다. 백신은 감염을 '예방'하는 약이지 이미 들어온 바이러스를 없애는 '치료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 경험 이전, 즉 바이러스에 노출되기 전에 맞아야 백신에 들어 있는 모든 유형에 대해 온전한 방어력을 얻습니다. 그래서 세계 각국이 접종 기준 연령을 11~14세로 잡습니다.
03 — FREE IN 20262026년 무료 접종, 누가 받을 수 있나
우리나라는 2016년부터 HPV 백신을 국가예방접종에 포함했고, 2026년 큰 변화를 맞았습니다. 5월 6일부터 12세 남성 청소년이 처음으로 무료 접종 대상에 포함된 것입니다.
| 대상 | 출생연도 | 지원 내용 |
|---|---|---|
| 12~17세 여성 청소년 | 2008~2014년생 | HPV 4가 백신 2~3회 + 표준여성청소년 건강상담(12~13세) |
| 12세 남성 청소년 | 2014년생 | HPV 4가 백신 2회(0, 6개월). 2026년 신규 확대 |
| 18~26세 저소득층 여성 | 1999~2007년생 |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 HPV 4가 백신 2~3회 |
접종 횟수는 첫 번째 접종을 몇 살에 시작했느냐로 결정됩니다. 14세 이하에 1차를 맞으면 6개월 간격으로 2회면 끝나고, 15세 이후에 시작하면 3회(0, 2, 6개월)가 필요합니다. 어린 나이에는 면역 반응이 강해 두 번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접종은 지정 의료기관이나 보건소에서 받을 수 있고, 예방접종도우미 누리집(nip.kdca.go.kr)에서 지정 의료기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26년 9월 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2027년 정부 예산안에 따라, 내년부터 국가접종 백신이 4가에서 9가로 전환되고 남성 청소년 대상도 13세까지 확대될 예정입니다. 국회 예산 심의를 거쳐 확정되므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04 — 4-VALENT VS 9-VALENT4가와 9가, 무엇이 다른가
숫자는 백신이 막아 주는 HPV 유형의 개수입니다. 4가 백신은 자궁경부암의 약 70%를 일으키는 16·18형과 생식기 사마귀의 원인인 6·11형을 막습니다. 9가 백신은 여기에 31·33·45·52·58형을 더해 자궁경부암 원인 유형의 약 90%를 포괄합니다. 특히 52형과 58형은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여성에서 비교적 흔한 유형이라 국내에서 9가의 의미가 더 큽니다.
| 구분 | 4가 백신 | 9가 백신 |
|---|---|---|
| 예방 유형 | 6, 11, 16, 18형 | 6, 11, 16, 18, 31, 33, 45, 52, 58형 |
| 자궁경부암 원인 커버 | 약 70% | 약 90% |
| 국내 허가 연령 | 9세 이상(제품별 허가 연령 상이) | 여성 9~45세, 남성 9~26세 |
| 국가접종 | 2026년 현재 지원 | 2027년 전환 예정(예산안 기준) |
| 비용 | 대상자 무료 | 비급여. 기관별 차이가 크고 총 3회 기준 수십만 원대 |
"그럼 무료 4가를 맞을까, 돈을 내고 9가를 맞을까?" 하는 고민이 나옵니다. 의학적으로는 어떤 백신이든 제때 맞는 것이 어떤 백신을 고르느냐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4가도 자궁경부암의 주범인 16·18형은 똑같이 막고, 스웨덴 연구의 88%라는 수치도 4가 백신으로 얻어진 결과입니다. 이미 4가를 시작한 자녀라면 굳이 9가로 다시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반대로 아직 시작하지 않은 2014년생 이후 아이라면 내년 9가 전환을 기다리는 선택도 가능하지만, 그 사이 접종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05 — ADULTS성인인데 이제 맞아도 될까?
답은 "나이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이득이 있다"입니다.
국내에서 9가 백신은 여성 만 45세까지 허가되어 있습니다. 성 경험이 있어도 9가지 유형 모두에 감염된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 아직 만나지 않은 유형에 대해서는 방어가 됩니다. 앞서 본 스웨덴 자료에서도 17~30세에 맞은 여성의 암 위험이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다만 나이가 많아질수록, 성 파트너 수가 많았을수록 이득은 점점 줄어듭니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와 대부분 국가는 9~14세를 최우선 대상, 15~20세를 그다음 대상으로 두고, 그 이상 연령은 개인별 상담 후 결정하도록 권합니다.
이미 HPV에 감염됐거나 자궁경부 이형성증 치료를 받은 분은 어떨까요. 백신이 지금의 감염을 없애 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치료 후 다른 유형의 새 감염과 재발을 줄일 가능성을 시사하는 연구들이 있어 산부인과에서 접종을 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신 중에는 접종을 미루고, 수유 중에는 접종할 수 있습니다.
06 — BOYS TOO아들도 맞아야 하나요?
이름이 '자궁경부암 백신'이라 여성만의 백신으로 오해받지만, 정확한 이름은 HPV 백신입니다. 남성도 HPV에 감염되고, 항문암·구인두암·음경암·생식기 사마귀의 원인이 됩니다. 질병관리청은 남성 접종 시 생식기 사마귀 89%, 외부 생식기 병변 91%, 항문 상피내 종양 78% 예방 효과를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특히 구인두암은 서구에서 이미 자궁경부암 발생을 넘어섰고 국내에서도 증가 추세라 남성 접종의 의미가 커지고 있습니다.
남성 접종에는 개인을 넘어선 이유도 있습니다. 남성은 증상 없이 바이러스를 갖고 있다가 파트너에게 전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녀가 함께 접종하면 집단 전체의 바이러스 유행 자체가 줄어, 접종하지 않은 사람까지 보호받는 효과가 생깁니다. OECD 38개국 중 37개국이 이미 HPV를 국가접종에 포함하고 있고 그중 다수가 남녀 모두를 대상으로 합니다.
07 — SAFETY안전한가? 2억 7천만 도즈가 답한 것
HPV 백신은 유독 안전성 논란이 길었던 백신입니다. 2013년 일본에서 접종 후 만성 통증·운동 장애를 호소하는 사례가 언론에 크게 보도되며 정부가 적극 권장을 중단했고, 그 여파가 우리나라에도 미쳤습니다. 그 뒤 십수 년간 무엇이 확인됐을까요.
WHO 산하 국제백신안전성자문위원회(GACVS)는 2006년 허가 이후 전 세계에 배포된 2억 7천만 도즈 이상의 자료를 여러 차례 체계적으로 검토했습니다.
- 접종 직후 실신은 백신 성분이 아니라 주사에 대한 불안·긴장 반응이며, 접종 후 15분간 앉아 있으면 예방됩니다
- 아나필락시스는 100만 도즈당 약 1.7건으로 다른 백신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 일본에서 문제가 된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기립성 빈맥증후군(POTS)과 백신 사이의 인과관계는 확인되지 않았고, 대규모 역학 연구에서 자가면역질환 위험 증가도 없었습니다
- GACVS는 오히려 약한 근거로 접종을 중단하면 자궁경부암 사망이 늘어나는 실제 피해가 생긴다고 경고했습니다. 일본은 2022년 적극 권장을 재개했습니다
국내 자료도 있습니다. 9가 백신의 국내 시판 후 조사(6년, 3,061명)에서 이상사례 발현율은 5.39%였고, 백신과 인과관계가 있는 중대한 이상사례는 0건이었습니다. 보고된 이상사례는 대부분 접종 부위 통증·부기·발적, 두통, 어지러움 같은 일시적 반응이었습니다. 가장 흔한 실제 불편은 "다른 백신보다 주사가 좀 아프다"는 것입니다.
08 — SCREENING백신을 맞으면 검진은 안 해도 되나요?
아닙니다. 9가 백신도 자궁경부암 원인 유형의 약 90%를 막을 뿐 100%가 아니고, 접종 전에 이미 감염된 유형은 막지 못합니다. 백신은 '앞단 방어', 검진은 '뒷단 방어'로 둘이 함께 가야 합니다. 국가암검진은 20세 이상 여성에게 2년마다 자궁경부세포검사를 무료로 제공합니다. 접종 여부와 관계없이 검진은 그대로 받으셔야 합니다.
09 — WHAT TO DO상황별 정리 —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 상황 | 이럴 때 | 이렇게 |
|---|---|---|
| 2008~2014년생 딸 | 무료 대상 | 지정 의료기관에서 4가 2~3회. 미루지 않기 |
| 2014년생 아들 | 2026년 신규 무료 대상 | 4가 2회(0, 6개월). 아직 안 맞았다면 내년 13세 확대·9가 전환 후에도 대상 유지 예정 |
| 20~30대 여성 | 미접종 | 9가 백신 3회(0, 2, 6개월) 접종 이득이 큼. 검진과 병행 |
| 30대 후반~45세 여성 | 미접종 | 허가 범위 내. 이득은 줄어드니 상담 후 결정 |
| 27세 이상 남성 | 미접종 | 국내 허가 연령(26세) 밖. 의사와 상담 후 개별 판단 |
| 임신 중 | 접종 예정이었다면 | 출산 후로 연기. 수유 중 접종은 가능 |
10 — TAKEAWAY한 줄씩 정리하면
- 자궁경부암의 95% 이상은 HPV 감염이 원인이며, 백신은 전암 병변이 아니라 실제 암을 줄인다는 것이 167만 명 추적 연구로 확인됐습니다.
- 효과는 17세 이전 접종 시 약 88%, 17~30세 접종 시 약 53% 위험 감소로, 어릴수록 크지만 성인도 이득이 있습니다.
- 2026년 무료 대상은 12~17세 여성(2008~2014년생), 12세 남성(2014년생), 18~26세 저소득층 여성이며, 14세 이하 시작은 2회, 15세 이후는 3회입니다.
- 2027년부터 국가접종 백신이 9가로 전환되고 남성은 13세까지 확대될 예정입니다(정부 예산안 기준). 다만 어떤 백신이든 제때 맞는 것이 우선입니다.
- 2억 7천만 도즈 검토와 국내 시판 후 조사에서 중대한 안전성 문제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접종 후 15분 앉아서 쉬면 실신은 예방됩니다.
- 백신을 맞아도 20세 이상 여성은 2년마다 자궁경부암 검진을 그대로 받아야 합니다.
자녀가 대상 연령이라면 망설일 이유가 없고, 성인이라도 45세 이전이라면 상담해 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원인이 밝혀져 있고, 막을 수단이 있고, 그 수단이 20년 가까운 검증을 통과한 암은 흔치 않습니다. 이번 가을, 가족의 접종 기록을 한 번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출처·더 읽어보기
- 질병관리청 예방접종도우미 — HPV 국가예방접종사업 (지원 대상·백신·접종 횟수, 남성 확대)
- 머니투데이 — 2027년 정부 예산안: HPV 9가 전환·남성 13세 확대 (2026년 9월 2일)
- Lei J 외. HPV Vaccination and the Risk of Invasive Cervical Cancer. N Engl J Med 2020;383:1340-1348
- WHO — Human papillomavirus vaccines: WHO position paper, December 2022
- WHO GACVS — Safety of HPV vaccines
- 보건복지부·국립암센터 중앙암등록본부 — 2023년 국가암등록통계
- 국립암센터 웹진 — 2023년 국가암등록통계 해설
가정의학과 전문의 감수 · 2026년 8월 검토